남태평양의 아름다운 섬나라 사모아에는 수천 년을 이어온 독특한 전통 의식이 있다. 파이아 에이바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신성한 음료의식에 대해 잘알려지지 않아 소개해보려고한다.
바로 ‘파이아 에이바’라고 불리는 의식이다. 이는 단순히 음료를 마시는 자리가 아니라, 공동체를 결속시키고 존중과 질서를 확인하는 사모아 문화의 핵심적인 행사다. 이 자리에서 사용되는 음료는 카바라 불리는데, 이는 후추과 식물의 뿌리를 갈아 만든 전통 음료로, 신성하고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사모아의 파이아 에이바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공동체의 질서를 확인하며, 전통을 계승하는 상징적인 행위이다. 오늘날에도 사모아 사회에서는 중요한 정치적 모임이나 부족 간 협의, 결혼식이나 환영식 같은 행사에서 빠지지 않고 진행된다. 그렇다면 이 독특한 전통의 기원과 실제 모습, 그리고 현대 사회에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파이아 에이바의 기원과 카바의 상징
사모아를 포함한 폴리네시아 지역에서는 수천 년 전부터 카바 음료가 신성한 의식에 사용되었다. 카바는 카바 뿌리를 빻아 물에 섞어 만든 음료로, 처음 맛보면 약간의 쓴맛과 흙내음이 느껴진다. 하지만 단순한 음료라기보다는, 공동체적 결속을 위한 매개체로 기능해왔다.
고대 사모아인들에게 카바는 신과 사람을 잇는 매개체였다. 신들에게 바치는 제물로도 사용되었으며, 부족의 지도자가 마시는 음료로도 자리 잡았다. 따라서 카바를 나누는 행위는 단순한 음용이 아니라 존중, 질서, 평등을 의미하는 신성한 의식이었다.
특히 파이아 에이바는 ‘서열과 조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부족 사회에서 각각의 인물은 자신이 속한 지위와 역할에 따라 음료를 받는 순서가 정해졌다. 이는 곧 공동체 내 질서와 규율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다시 말해, 한 잔의 카바가 공동체 전체를 하나로 연결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카바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사모아 사회에서 카바는 여전히 존중과 환영의 표시, 그리고 공동체적 유대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중요한 외국 손님이 방문했을 때 파이아 에이바 의식으로 맞이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파이아 에이바 의식의 실제 진행 과정
파이아 에이바는 엄격한 전통과 절차에 따라 진행된다.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원형으로 둘러앉으며, 그 중심에는 커다란 나무 그릇이 놓인다. 이 그릇은 ‘투노아’라 불리며, 카바 음료가 만들어지는 곳이다.
카바 준비
의식은 보통 젊은 여성이나 남성이 카바 뿌리를 빻아 물에 섞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과정은 단순히 음료를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정성과 존중을 담는 행위로 여겨진다. 카바가 투노아 안에서 섞이고 걸러지는 동안, 참석자들은 경건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분배의 질서
카바가 완성되면, ‘투아투아’라고 불리는 진행자가 조심스럽게 음료를 작은 컵에 담아 참석자들에게 전달한다. 이 컵은 보통 코코넛 껍질을 반으로 잘라 만든 전통 잔이다. 중요한 점은 누가 먼저, 누가 나중에 받는지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보통 최고 지도자나 귀빈이 첫 잔을 받고, 이후 부족의 서열에 따라 차례차례 전달된다. 이를 통해 공동체 내의 질서가 다시 한 번 확인된다.
마시는 방식
잔을 받은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약간 몸을 앞으로 숙여 존중을 표한다. 이후 카바를 단숨에 마신 후, 잔을 다시 진행자에게 돌려준다. 이 과정을 통해 참석자들은 모두가 하나의 음료를 공유하며 공동체적 일체감을 느낀다.
의식이 끝날 때쯤이면, 단순히 카바를 나눈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집단과 집단이 하나로 연결되는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 파이아 에이바가 주는 의미
오늘날 사모아는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 속에 있지만, 파이아 에이바는 여전히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특히 결혼식, 장례식, 졸업식, 정치적 협상, 국가적 행사에서 파이아 에이바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으로 기능한다.
사모아 사람들에게 파이아 에이바는 ‘함께함의 상징’이다. 단순히 한 잔의 카바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중과 공동체적 가치를 확인하는 자리다. 특히 외부에서 온 손님을 맞이할 때 이 의식을 거행한다는 것은 “당신을 우리의 공동체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환영의 메시지다.
흥미로운 점은 파이아 에이바가 현대 사회의 소통 문제와도 연결된다는 것이다. 점점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디지털 소통이 중심이 되는 시대에, 사모아의 전통 의식은 얼굴을 맞대고 한 음료를 나누며 대화하는 원시적이면서도 근본적인 소통 방식을 보여준다.
또한 파이아 에이바는 평등의 가치를 상징한다. 분배의 순서가 엄격히 정해져 있긴 하지만, 결국 모두가 같은 음료를 나누며 같은 경험을 공유한다. 이는 공동체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존중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하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리 사회에도 이 전통이 던지는 시사점은 크다. 개인의 편리와 위생만을 강조하며 점점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는 현대적 삶 속에서, 파이아 에이바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함께하는 경험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는지를 일깨워 준다.
사모아의 파이아 에이바는 단순한 전통 의식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와 신앙, 공동체의 유대, 그리고 인간의 본질적인 소통 욕구가 집약된 상징적 행위다. 카바라는 한 잔의 음료를 돌려 마시는 과정 속에는 서로에 대한 존중, 공동체적 결속, 평등의 가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만약 언젠가 사모아를 방문한다면, 파이아 에이바 의식을 직접 경험해 보기를 권한다. 그 순간 당신은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 안으로 따뜻하게 초대받은 손님이 될 것이다